2023-01-12

[100년을 돌아보며 II. 「국적있는 전문용어」에 관한 단상] 국적 없는 말이 아닌 국적 있는 말로!

말산업현장에서 생산자나 조교사, 마주, 수의사(수의대생) 혹은 경마시행체 직원 등의 말관련자들은 자주 전문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여기서 전문용어란 일반인이 거의 평생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용어를 의미하는데 그들이 ‘좌전지 외측근위종자골 원위단’이라는 용어를 쓸 일이 만무하다. 위 해부학 용어를 제대로 쓰면 ‘왼앞다리 가쪽몸쪽종자뼈 먼쪽끝’이 된다. 말은 205개의 뼈를 가지고 있는데 머리뼈에서 꼬리뼈까지 각각의 뼈에도 고유한 이름이 있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대롱뼈’라 불리는 뼈는 어느 순간 잠식되어버렸고, 일본식 용어 ‘중수골’, 그중에서 ‘제3중수골’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이는 100년 전 일본에서 근대경마가 들어오면서 전문용어들이 중구난방으로 묻어왔고, 우리나라에서 일본규정에 있는 전문용어와 전문책들을 번역하면서 그대로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100년 전 당시에 일본경마시행체에서 수의해부학용어 역시 인체해부학 용어를 따랐고, 그게 그냥 말해부학에 적용되며 굳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냥 사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람해부학 용어 역시 일본해부학용어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인체의학이나 수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중 의학계에서는 1990년대 이후 우리말용어가 거의 완전히 제정되었고, 수의학계는 21세기가 되면서 우리말용어를 제정하였다. 오래전 나의 논문 역시 더러브렛 망아지에서 골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위는 제3지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당시 흔하게 쓰던 일본식 용어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논문과 저서에 옛용어를 쓰지 않는다. 한국수의해부학용어위원회에서는 제골 또는 제3지골의 공식용어를 ‘끝마디뼈’라 명시하기 때문이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말산업국가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위원들이 표준교재 3차개정판 발간을 위해 여러 번 회의한 적이 있다. 나는 교재에 쓰이는 공식용어만큼은 한국수의해부학용어위원회에서 만든 『우리말수의해부학용어』를 참조해서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기존의 용어를 그냥 사용하자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 이유는 ‘앞발허리뼈’라는 5음절보다는 ‘중수골’이라는 3음절이 더 편하고, 실무에서도 여전히 일본식 용어가 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논리라면 모순이 생긴다. 예를 들면, ‘앞다리의 앞발허리뼈는 어깨에서 발굽까지 이어지는 뼈 20개 중 3개가 있다’를 일본식 용어로만 쓴다면‘전지의 중수골은 견에서 제까지 이어지는 골 20개 중 3개 있다’로 해야 한다.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실무에서는‘전지의 중수골은 어깨에서 발굽까지 이어지는 뼈 20개중 3개가 있다’로 말한다. 때론 ‘기갑은 머리에서 허리까지 부위 중 가장 높은 곳이다.’우리말과 일본식 용어가 혼재해 있는데 이 얼마나 일관성이 없는가? 또한 일본식 용어로만 쓰면 동음으로된 뼈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비골은 비골(鼻骨)과 비골(腓骨)이 있는데 코뼈와 종아리뼈가 있다. 관골 역시 관골(顴骨)과 관골(臗骨)이 존재하는데 이는 광대뼈와 볼기뼈가 우리말로 존재한다.

지난 100년 동안 그렇게 써 왔다면 앞으로 1000년을 위해 이제는 바르게 사용할 때이다. 정인혁과 고기석의 연구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자 한다.

‘언어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창의력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전문용어도 전문적 수준, 생각과 창의력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말을 더욱 다듬고 가꾸어야 하는 것은 우리를 보는 거울이고, 미래를 더 밝힐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해부학용어가 걸어온 길. 대한체질인류학회지 2017, 30, 11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