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4

한국의 경마

1894년부터 서구식 경마가 싹트기 시작하여 1914년 4월 일본인에 의하여 최초의 경마가 용산구 연병장에서 마권의 발행 없이 시행되었다. 그 후 여의도, 훈련원(현 동대문운동장) 등지에서 열리다가, 22년 4월 한국 최초의 경마시행체인 사단법인 조선경마구락부가 발족, 한강 백사장에서 매년 봄 ·여름에 개최되었다. 24∼28년에 평양 ·대구 ·신의주 ·부산 ·군산에도 법인 경마구락부가 설립되어, 전국 6개 도시에서 열렸다. 28년에 경성경마장이 동대문 밖 신설동으로 이전되어 본격적인 경마가 시작되었으며, 32년 조선경마령 및 시행규칙이 제정 ·공포되었고, 33년에는 조선경마협회가 설립되었다. 37년에 함흥 ·청진 ·웅기에도 경마구락부가 생김으로써 9개 구락부 ·경마장으로 늘어났다. 41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일본 전쟁수행에 필요한 마필자원의 증산 ·확보를 위하여 조선총독부에서는 42년 조선마사회령을 공포하여 기존 9개 경마구락부와 조선경마협회를 해체하고 ‘조선마사회’를 경마시행체로 발족시켰다.

45년 8 ·15광복과 함께, 그 해 11월 조선마사회를 한국마사회로, 신설동에 있는 ‘경성경마장’을 ‘서울경마장’으로 개칭하였다. 47년 한국마사회는 마필의 개량 ·증식과 경주용 마필의 육성을 위하여 경북 경주에 종마목장을 개설하였다. 50년 6 ·25전쟁으로 경마는 중단되었고 종사원과 마필은 분산되었으며, 경마장은 폐허화하였다. 54년 당국의 협조와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성수동(뚝섬)에 새로이 경마장을 마련하고, 마필을 사 모았다. 그러나 수가 부족하여 대부분 제주산 조랑말로 경주를 시행하였다. 62년에 종전의 조선마사회법이 폐지되고, 한국마사회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66년에 민간자본을 도입하여 시설을 확장하고 마필의 수입에도 힘을 기울였다. 72년 다시 민간투자 시설을 인수, 한국마사회가 단일 시행체, 단일 마주, 단일 시설주로 경마를 시행하였다. 88년에 경마 최대의 사업인 과천 올림픽 승마경기장 겸 대단위 경마장이 건설되었고, 전산화가 완료되어 한국 경마의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였으며, 93년 8월부터 개인마주제가 시행되었다.